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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삿포로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막연한 이미지밖에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집어왔다. 내가 애정하는 사람은 그 장소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서. 진솔하게 써내려간 그곳에서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한 생각들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를까, 그곳에서 무엇을 깨닫고 돌아올 것인가. 여행을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여행지에서는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면 생각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낚아채야한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이 심심한 풍경과 부드러운 초록색이 지금의 나에게 치료제가 되어주겠지. 나는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밥을 꼭꼭 씹어 먹듯 눈 속에 꼭꼭 담았다.


*아주 단순한 것을 하고 싶었다. 살아간다. 그게 멋있든 멋있지 않든. 그렇게 구르다 보면 노래가 되는 순간을 만난다. 이 또한 멋있든 멋있지 않든 노래로 만든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도록, 순도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편곡을 하고 녹음을 한다. 소리를 다듬는다. 공연을 한다. 누군가가 그 음악을 듣는다. 그 음악은 다시 그 사람의 것이 된다. 이게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처 몰랐던 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많은 인터뷰와 수많은 해석들. 좋은 순간만큼 존재하는 좋지 않은 순간들. 빛은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금세 사라졌고 어둠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달콤한 말만 듣고 씁쓸한 말은 흘려들으면 된다. 하지만 흘려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한다는 뜻이다. 나도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무시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떤 것 같다. 아직 내 마음의 용량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얇고 작은 냄비를 가스렌지에 올려놓고는 약한 불에도 부글, 하고 끓어넘치는 그 냄비 앞에서 난 자꾸 화상을 입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내 머릿속의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순식간에 나쁘고 밉게 보이는 것. 나는 그게 무서워서 동경조차 받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고 새로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기분, 나의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어떨까 생각해봤지만, 결국 지구 위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는 수많은 일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살든 힘겨움이 따르게 되어 있는 우리들의 삶. 그래,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게 좋겠지. 고통은 반드시 따르겠지만 하기 싫은 것을 한다고 해서 누가 애쓴다 하며 고통을 덜어주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우리 모두, 실수하며 산다. 친구 사이에, 서로 좋아하는 사이에 잠시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일들이 더 이상 실수가 아닌 잘못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을 해보아도 나중에 나쁜 일들이 되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한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간단한 사실, 이해하고 또 그걸 받아들이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낙서를 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많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건 참 중요하다. 스스로의 성숙을 느끼는 일보다 두 배는 더 중요한 것 같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너무도 위험했다.


*여러 의견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확한 방향을 정하고 또 그 방향에 가장 멋지게 도달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처음엔 쉽지 않았다. 내 일을 하는데, 남이 진심으로 도와주는 그런 상황이 내게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속고만 산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세상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걸 너무 빨리, 극단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집에는 여러 뮤지션들이 힘을 빌려줬다. 그동안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정말 이 사람들이 내 음악을 같이 만들어줄까? 하는 의심이 몰래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다들 내 예상을 뛰어넘는 정성과 재능을 보여주었다. 마법 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놀라웠다. 그래도 혼자 구석에서 분투하는 내 나쁜 버릇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았다. 일이 커지고 판이 커지면, 모든 걸 혼자 해내기에 힘들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멍청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함께 연주해주는 사람들,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어떻게 해야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받은 만큼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함께 지금보다 더 멀리까지 가고 싶은데... 그들이 나와 음악을 하면서 순간의 즐거움이나, 일로서의 의무감만이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을 느껴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려면 내가 음악을 더 잘해야지. 내 서툰 부분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지. 더 나아지려는 노력, 그리고 배려를 보여줘야지. 그들이 연주하면서 자랑스러워 할 팀을 만들고 싶다. 자랑스러워 할 음악을 만들고 싶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할 노래를 부르고 싶다.


*어젯밤 그렇게도 날 심각하게 했던 일들이 다음날 아침에는 '에이,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뭐.'라는 말로 정리되어버린다. 그래, 밤의 기분으로 뭔가를 하는 건 음악으로 족해. 다른 건 하지 말자. 특히 엄한 곳에 전화하지 않기, 하소연 하지 않기, 헛소리 하지 않기, 저지르지 않기, 결정하지 않기, 어쩌면 이건 어른의 의무이자 미덕일지도 몰라.


*직접 앨범을 만든 전적 때문인지 나에게 무쇠 같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일을 할 때 약한 소리를 안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는 센 말을 많이 듣고, 들어와서는 나약한 사람이기에 많이 꺾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찌르면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슨 소리. 당신이 바늘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난 남에게 절대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태연하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다. 정말 사랑받고 컸구나, 그런 환경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 곁에는 무슨 말을 해도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 있나 보다 싶다. 


*나 자신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어둠 속에서 헤매일 때 그런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멀리 보이는 등불처럼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에 최대한 잘하고 싶다. 결코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단지 더 사랑 받고 싶어서, 그래서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이다. 나는 죽 이런 어린애 같은 생각으로 지내고 싶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끝까지 이를 악물고 견디면 뻔한 얘기지만 결국 얻는 게 있더라. 그게 꼭 달콤한 장미빛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쓴 것도 단 것도 모두 내 소중한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 태도는 결국 나를 지옥 같은 곳에 여러 번 빠뜨렸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잠시나마 천국에 가보지도 못했을 것이라 여긴다.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이렇게 노래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그게 궁금해서.


내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무엇을 잘했는지, 

사람들은 날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무엇을 알고 있다고 착각했는지, 

내가 흔들림 없이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기차를 타면 답이 하나씩 떠오를 것만 같았다.


*고민은 누구에게나 항상 있다.

그걸 풀려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고민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사람들에게 내보일 무기는 자신의 마음밖에 없는 가난한, 하지만 충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깨끗한 눈과 맑은 표정을 마주하면 그냥 눈물이 난다.


*마음의 정수에 닿고 싶었다. 순도를 높이려 노력했고,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집중했다.


*그래도 매번 꾸역꾸역 떠나는 이유는 아마도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내 집과, 내 친구들과, 내 쓰고도 단 인생이 더 좋아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한 것을 깨닫기 위해 고생을 한다. 모두들 그렇다. 너무 당연해 잊혀지기 쉬우니까, 매번 스스로에게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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